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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주일대 역사유적 탐방(반구정, 임진각, 화석정)[2017.12.3]

맑은샘 2017. 12. 3. 23:22


♣ 라이딩경로 : 행주대교남단 ~ 화도교(창릉천) ~ 공릉천 ~ 파주우체국(금릉역) ~월롱산입구 ~ 황희정승묘입구 ~ 반구정 ~임진각 ~ 화석정 ~ 문산역(약 80km)

♠ 함께한멤버 : 흰구름님, 브라보님, 따뜻한가슴님, 강화도령님, 맑은샘(이상 5명)

▲▼ 창릉천을 달리며...      

      새벽녁에 비가 내려서 길바닥이 촉촉하다.

      가믐을 해갈하기엔 턱없이 부족하지만 그래도 아침 일찍 비가 그치니 라이딩하는 입장에서는 고마울 따름이다.


▲ 공릉천을 횡단하는 원당교에서 ...

▲ 공릉천 자전거길을 달리며...   (공릉천 자전거길은 이용하는 사람들이 적어 한적한 가운데 아무런 방해를 받지 않고 맘껏 달릴 수 있어 좋다)

▲▼ 월롱산 입구에서...

     오늘은 당초 월롱산에 오를 계획이었으나 일행의 제의에 따라 "임진각~화석정" 방면으로 라이딩 코스를  변경하였다.

     덕분(?)에 월롱산 라이딩(빡센 업힐)은 생략하였다.


▲ 반구정 입구에서...

  반구정(伴鷗亭)은 고려말에서 세종조에 이르기까지 장기간 임금을 보필하고 89세로 장수하였던 청백리 '황희정승(1363~1452)'이 말년에 관직을 사양하고 고향에 돌아와 갈매기를 벗 삼아 지낸 곳으로 임진강 하류의 절경 지역에 세워진 정자이다. 바로 윗쪽에 앙지대(仰止臺)가 있다. 분단의 현실을 체감할 수 있는 철조망이 반구정 언덕과 임진강을 가로 막아 낙조가 들면 더없는 슬픔과 아름다움을 한꺼번에 느끼게 해주는 곳이다. 허목(許穆)의 반구정기(伴鷗亭記)에 "조수때마다 백구가 강위로 몰려들어 모래사장 벌판에 가득하다" 고 하였다.
  1452년 황희정승이 세상을 떠나자 유덕을 추모하기 위해 지은 방촌영당과 제사를 지내는 경모재가 구역 내에 있으며, 임진강을 바라보고 있는 그의 동상이 서 있다. 상주의 옥동서원과 장수의 창계서원에 제향되고 있으며, 황희 정승의 묘는 반구정에서 문산쪽으로 가다가 탄현면 금승리 산능선에 있다. 황희 정승은 좌천, 파직, 귀양살이 등을 당하면서도 60년간의 관직생활을 통해 법률과 제도를 정비하고 세종대왕의 한글창제를 돕는 등 태평성대를 이룩하는 위업을 달성했다.

▲▼ 임진각에서 ...

휴전선에서 남쪽으로 약 7km 떨어진 지점에 있다. 남북분단이라는 한국의 비극적인 현실을 상징하는 이색적인 장소이다. 이곳은 민간인의 출입이 제한되는 북쪽 한계선으로 남북을 관통하는 지리적 특수성 때문에 국방상의 요지이며, 실향민들이 자주 찾는 곳이기도 하다.

임진각은 연건평 2,442㎡로 지상 3층, 지하 1층으로 되어 있다. 3층에는 전망대가 있어 임진강과 자유의 다리 일대의 아름다운 경관을 볼 수 있으며, 2층에서는 경양식·일식 식당, 1층에는 한식당과 관광기념품 판매대가 있다.

임진각 남쪽에는 반공전시관·임진각지역전적비·미군참전기념비 등이 자리잡은 통일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부근에는 통일로와 나란히 달리던 경의선이 끊어져 있고 '철마는 달리고 싶다'라는 표지판이 있다. 이곳에서는 1977년부터 매년 연초에 연시제, 추석에 망향제를 올리며, 그밖에도 북한에 계신 부모님을 경모하는 행사가 열린다.

서울에서 자유의 다리까지 길게 뻗은 통일로를 따라 은행나무·향나무·아까시나무 등의 가로수가 늘어서 있으며, 휴일이면 많은 사람들이 이 길을 통해 임진각을 찾는다.















▲▼ 뒤로 임진강을 가로지르는 철교가 언젠가 남북을 왕래하게 될 통일열차를 하염없이 묵묵히 기다리고 있다.



▲▼ 화석정 가는길에서 ... 

▲ 수천 마리의 철새가 넓은 평야의 수많은 논중에서 유독히 한 필지 내에 운집해서 먹이활동(?)을 하고 있는 것이 특이하다








▲▼ 화석정에서 ...

화석정(花石亭)은 원래 고려 말의 유학자인 길재(吉再)가 조선이 개국하자 벼슬을 버리고 향리에 돌아와 후학을 양성하던 곳이었는데 사후 그를 추모하여 서원을 세웠다고 한다. 그 후 폐허가 되었다가 율곡 이이의 5대조인 강평공 이명신(康平公 李明晨)이 세종 25년(1443년)에 정자를 세우고 1478년 증조부 이의석(李宜碩)이 중수하였다. 이숙함이 화석정이라 명명하였으며, 이이 때에 이르러 다시 중수된 유서깊은 곳이다.
정자 주변에는 느티나무가 울창하고 그 아래 임진강에는 밤낮으로 배들이 오락가락 하였으며 밤에는 고기잡는 등불이 호화찬란 하였다고 하나 지금은 임진강을 철조망이 가로막고 있고 느티나무 몇 그루만이 그 시절을 증명해주고 있어 쓸쓸하다. 율곡 선생은 평소 정자에 제자들과 함께 기둥과 서까래 등에 들기름을 반질반질하게 먹여 두었다고 하는데, 훗날 임진왜란(선조 25년, 1592년)이 일어나 선조가 의주로 파천할 당시(4월 29일 밤) 억수같은 폭포속에서 강을 건널 때 이항복이 화석정에 불을 질러 무사히 배가 강을 건넜다고 전한다.
율곡선생은 국사의 여가가 날 때마다 이곳을 찾았고 관직을 물러난 후에는 여생을 이 곳에서 제자들과 함께 보내면서 시와 학문을 논하였다고 한다. 당시 그의 학문에 반한 중국의 칙사(勅使) 황홍헌(黃洪憲)이 찾아와 시를 읊고 자연을 즐겼다는 설도 있다. 임진왜란때 불 타 없어져 80여년간 터만 남아있는 것을 현종(顯宗) 14년(1673)에 율곡선생의 증손 이후지(李厚地) . 이후방(李厚坊)이 다시 세웠으나 한국전쟁때 다시 소실되었다. 현재의 화석정은 1966년 파주 유림들이 성금을 모아 복원한 것으로 건축양식은 팔작지붕 겹처마에 초익공(初翼工) 형태로 조선시대 양식을 따랐다. 건물의 정면 중앙에는 박정희 전대통령이 쓴 '花石亭' 현판이 걸려 있으며, 내부 뒷면에는 율곡선생이 8세때 화석정에서 지었다는 <八歲賦詩> 가 걸려있다. 임진강이 휘돌아 흐르는 언덕에 세워진 화석정의 전망은 아름답기 그지 없다.


八歲賦詩 林亭秋已晩 騷客意無窮 숲 속정자에 가을이 이미 깊으니 시인의 생각이 한이 없어라
遠水連天碧 霜楓向日紅 먼 물은 하늘에 닿아 푸르고 서리 맞은 단풍은 햇빛 받아 붉구나
山吐孤輪月 江含萬里風 산은 외로운 달을 토해내고 강은 만리 바람을 머금는다
塞鴻何處去 聲斷暮雲中 변방 기러기는 어디로 가는가 저녁구름 속으로 사라지는 소리

이밖에도 서기정, 권남, 정철, 송시열 등 많은 문인들이 여기서 시조를 읊었다고 한다.



오늘도 함께하여 즐겁고 행복하였습니다